공감은 기능테스트인가?

공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기능 테스트를 떠올렸는가?
1년 전쯤인가, 그때 봤던 영화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져가는 인물을 비추고, 나긋나긋한 노래속에서 주변 인물들이 슬피 우는 것을 봤을 때 슬펐는가? 슬픈 장면으로 보이지만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았고 무덤덤하게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상징인 태양처럼(내 생각에는 그렇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은 결과와는 관계없이 후련해보였다. 한 평생 한 길만을 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마음이 그랬다.
화목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인물. 하지만 이 생활은 적의 모략으로 인한 거짓된 낙원이다. 이를 깨닫고 환상 속의 집으로부터 뛰쳐나가는 그를 배웅해주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걱정어린 표정. 잠깐 뒤돌아본 사이에 그 모습을 본 그가 눈물을 훔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봤을 때 슬펐는가? 엄청 슬펐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이 장면을 고른다. 다른 하나는 위 문단의 인물이 스러지는 장면이고. (지금 생각해보니 태양의 인물이 사라지고 절묘하게 진짜 태양이 뜨네. 아무리 태양같아도 진짜 태양은 못 이긴다는 것인가. 노린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앞뒤 상황을 맞춰봐서 “이 사람은 지금 슬픈가?”가 그렇다면 슬픈 타입. 하지만 인간의 뇌는 너무나 뛰어나서 저런 사고는 무의식으로 처리를 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냥 팟하고 슬프다, 아니다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는 그저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저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팟하고 나오는 타입이란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왜 제목이 저런지 공감이 가는 독자가 있다면 이제 창을 닫아도 되겠다. 시간은 공평하지만 소중하니까.
이제부터 제목에 대한 짧은 의견을 쓰려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능 테스트: 특정한 데이터를 입력하여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그 결과는 예상에 얼마나 근접하는가? 이다.
내가 생각하는 공감: 특정한 사례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그 감정은 사례 제공자의 예상에 얼마나 근접하는가? 이다.
예상에 근접할수록 잘 만들어진 기능이고,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프로그램의 기능을 만들다 보면 참고자료로 기계의 시연 영상이나,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 생물의 행동양식을 찾아보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공통점을 찾아서 추상화하는 것이 프로그래머의 일이다보니). 이 우주의 법칙에 속한 생물들이 각각의 뇌라는 회로를 사용하여 결과를 내고있다.
이제보니 공감과 기능 테스트는 동등한 게 아니라 공감에서 기능 테스트가 파생된 걸 수도 있겠다. 아니면 공감은 생물의 프로그램명이고 기능 테스트는 알고리즘명이고 (공감: 데이터 + 기능, 기능 테스트: 기능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필자의 부족한 지식으로 알고리즘의 정의와 다를 수 있는 점 양해바람). 애초에 컴퓨터를 만들고 기능 테스트라는 걸 정의했던 사람들이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만든 걸 수도 있겠다. 모방없이 창작은 없으니까.
공감은 생물의 기능 테스트 프로그램이다.